삶의 조언

지식의 여신은 절대로 그 신비한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achivenKakao 2005. 4. 6. 23:44

지식의 여신은 절대로 그 신비한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좀더 재미있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도전적이면 진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나성언 (마이크로소프트웨어 7월호)
2001/06/27


 
젊은이들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평범한 엔지니어가 되면 일단은 그저 그런 봉급에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반납해야하는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다.
금전적인 문제야 시대상황이 급변하는 만큼 변수가 많아 논외로 치더라도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 하거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내며 코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이런저런 애환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일을 통해 나름의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그 생활은 그저 고달픈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엔지니어 생활의 가치란 무엇일까.
나의 경우를 들자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대단한 일은 못될 지라도, 일단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과정을 즐기고 있다.
새로 맡은 개발 업무를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 내가 잘 인용하는 지식에 대한 몇 가지
법칙이 있다.
그 첫번째는 바로 ‘지식의 여신은 쉽게 옷을 벗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의 여신은 새침데기에 콧대가 높아서, 절대 함부로 그 신비한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각자의 위치와 ‘내공’에 따라 업무를 할당받게 될 것이다.
익숙한 업무를 반복하는 것이라면 이미 통성명을 거치고 술자리까지 마쳐 친숙해진 몇몇 여신들과
반갑게 하이파이브나 하면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겠지만,
대신 재미가 좀 덜하고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좀더 재미있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대로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그 동기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공’ 쌓기를 통한 몸값 키우기처럼 좀더 세속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름대로 대단한 결심을 한 직후, 우리는 자신 앞에 낯선 문 하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문을 여는 순간 신비스러운 자태의 지식의 여신이 범접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길을 가로막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신의 허락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적절한 ‘내공’을 쌓지 못한 채 아부나 인맥으로
정치공작을 해댄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야속하리 만큼 냉정한 새침데기 여신의 괄시와 배척뿐이다.
길은 오로지 정성을 다해 공을 들이는 것뿐이다. 그동안 재수로 한두 번 일이 쉽게 풀렸다고 할지라도,
아니면 타고난 재주를 통해 여태껏 문제없이 일을 해결해 왔을지라도 언젠가는 각자 수준에 맞는
호적수를 만난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여신의 비밀을 풀기 위해 우리들은 오늘도 디버거에 올린 코드를 수십, 수백 번 재실행하거나 이미
누더기가 된 칩 사양서를 읽고 또 읽으며, 다운된 보드를 하루에도 수백 번 재부팅해야만 한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나가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
상급자가 무서워서, 아니면 회사의 중요한 전략적 과제에 대한 책임 때문에 포기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고 저렇다는 통속적인 설명을 떠나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될 한 가지
더 큰 이유가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여신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보상을 돌려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식에 관한 두 번째 법칙으로, 지식의 여신은 쉽게 지식을 허락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 번 자신을 극복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너스까지 덧붙여서 마구 퍼준다는 것이다.
한 번 여신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순간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얽혀 자신을 괴롭히던 많은 문제가 한순간 제자리를 잡으며 머릿속에 정돈될
때 느끼는 환희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으며, 이제 지식의 여신은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차례차례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게다가 한 번 지식의 여신의 선물을 받아보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성공 체험이 되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법칙만 남았다. 우리는 얼마간 그 여신의 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쾌적한 상태가 지속될수록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프로젝트는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고 여신과 작별
인사도 이미 나눴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잠시 여신과의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심코 코너를 돌아선 순간 우린
‘악’하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만다.
지식에 관한 세 번째 법칙, ‘지식의 여신은 코너를 돌면 또 나온다.’
새로운 얼굴의 여신이 또 길을 막아선 것이다. 아마도 뉴튼은 이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진리의 바다에 이제 막 발목을 담갔을 뿐이라고 겸손을 보였던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