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는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 너무도 고요해. ]
[외롭겠다.]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이지.
두 번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자기가 없어지게 되면
미아가 된 조개 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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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조제.. 몸이 불편하지 않은 츠네오.
그들은 보통의 연인처럼
만났고..사랑했고..서로에게 지쳐 이별을 한다.
사랑이라는 게 누가 먼저 시작하고, 누가 먼저 끝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저 그런 어느 날,
"그들은 만났고.."
"마음이 통해 사랑을 했으며.."
.."이별을 했다."
사랑이라는 문제에서 만큼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만남은
영화 첫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몇 장의 흑백스틸 컷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이 사랑했던 사실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짧지 않은 시간 그들은 같이 있었으며.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받은 영향을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은 살아가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심어줄 것이다.
사랑에 `쿨한 끝` 이란 것이 있을까?
떠나는 애인을 원망하며
길거리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나,
이별을 고하는 연인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며
둘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담담히 건네주는 사람이나,
항상 함께 먹던 반찬거리를 혼자 장보러 나간 길에 사오는 사람이나,
그들 중에 누가 더 쿨하고, 누가 더 너저분한지,
누가 더 신파적인지
그런 것을 수치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말없이 혼자 식사할 분량만큼의 생선을 굽고 있던
조제의 눈빛도 그랬다.
조제가 챙겨준 포르노 잡지를 웃으며 받아들고
집을 나섰다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던
츠네오의 모습도
충분히 그랬다고 생각한다.
마치 출근하듯 이별을 건네는 그들..
츠네오 때문에 조제는 어둠의 바다 밑이 아닌 세상 밖으로
손을 뻗어 당당히 살게 되었다.
조제 때문에 츠네오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조제와 츠네오는 사랑을 했다.
영화 속 츠네오처럼..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영화.
언젠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