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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 수는 있으나 그가 올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살아야한다.

achivenKakao 2007. 6. 18. 14:41
헬스장에서 신문을 보다.

공지영의 가족 소설을 봤는데..

내가 가끔씩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그리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 나와서 올려본다..

"다윗의 좋은 점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 줄 알았을 때, 바로 반성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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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 (78) [중앙일보]
가을 `내가 갈 수는 있으나 그가 올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살아야한다`
그림=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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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새 식구가 하나 늘었다. 엔젤 병원 수의사 선생님에게 드디어 연락이 온 것이다. 선생님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내게 전화를 하셨다. 달려가 보니 선생님의 품 안에 눈처럼 흰 아기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와우! 놀라운 일이었다. 눈처럼 희고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는 내가 그를 바라보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순간 다시 내 망막으로 코코의 회색 눈빛이 겹쳐졌다. 나는 그 고양이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상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내가 이 흰 고양이를 두고 너무 좋아하면 왠지 코코에게 미안한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지난주 동안 가끔 우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구약에 말이야, 다윗이라는 사람이 나와.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야. 너희 알지? 솔로몬의 아빠 말이야. 원래 다윗은 부인이 꽤 여럿 있었는데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돼. 사막 지방에서는 그게 약한 여자들의 생존 수단이기도 했으니까, 엄마? 물론, 엄마는 그런 남자랑 살기 싫어- 어쨌든 그 사람이 부인이 여럿 있는데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반해서 그 여자의 남편을 죽게 하고 그 여자랑, 험! 말하자면 불륜을 저질러서 아이를 낳지. 신이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 잘못을 경고해. 그 잘못에 대한 벌로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죽게 될 거라고 신탁을 내리지. 다윗의 좋은 점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 줄 알았을 때, 바로 반성하는 거야. -이 점을 너희는 특히 명심해야 해!- 그는 바로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아이를 죽지 않게 해달라고 단식하며 신께 기도하지. 그렇게 여러 날 기도했는데 아이는 죽어. 그러자 다윗은 바로 음식을 가져와 먹고 다시 좋은 옷을 입어. 신하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은 아이인데, 실은 죽고 난 다음 곡을 하고 재를 뒤집어쓰는 게 더 맞잖아? 그런데 다윗이 말하지. '이제 내가 그리로 갈 수는 있으나 그는 다시는 내게 올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내 삶을 그냥 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태어난 게 솔로몬이야. 솔로몬이 괜히 혼자 지혜가 있었던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

엄마는 말을 하고 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가 한 말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뇌어 보았다. "내가 그리로 갈 수는 있으나 그가 다시는 우리에게 올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나는 그냥 내 삶을 살아야 한다."

"선생님 이 고양이 시베리아산 네버 마스커레이드 아니에요?"

내가 묻자 엔젤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셨다. "위녕 고양이 공부 많이 했구나."

"이거 비싼 건데…. 이런 고양이도 누가 버리나요?"

혹시라도, 이건 아니구, 라고 할까봐 떨리는 마음에 나는 천천히 물었다. 엔젤 선생님은 다시 빙긋이 웃으셨다.

"버린 건 아니구, 내 친구 녀석이 키우던 고양이인데…. 이번에 새끼를 네 마리 낳았기에 내가 한 마리 달라고 했다."

내가 우물거리며 엔젤 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은 그 눈처럼 하얀 고양이를 내게 안겨주셨다.

"코코 아픈 걸 낫게 해주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내가 특별히 네게 주는 거야. 자, 위녕. 죽지 않는 고양이는 세상에 없지만 적어도 이 고양이는 한동안은 죽지는 않을 거야."

여우처럼 앞 코가 뾰족하고 얼음 공주처럼 생긴 흰 고양이는 내 품에 안겨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드라운 털을 쓸어내리자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쁨이 내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잘 키워라. 라떼가 여자라서 얘도 여자로 골랐어. 접종하러 다시 올 때는 주사 값은 받을 거다."

참 이상하다. 내가 힘들고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 세상에는 그렇게 이상하고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는데, 내가 행복하고 내가 편안할 때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넘친다. 아니, 실은 그게 반대로 되는 것이던가.